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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3 00:07
국민일보 - [믿음의 가정을 찾아서] 증조모때부터 이어진 믿음의 뿌리(20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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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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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 [믿음의 가정을 찾아서] 증조모때부터 이어진 믿음의 뿌리
사촌간인 오창희(41·총신대 대학원) 오대희(34·도서출판 프리셉트 편집장) 형제 집안은 튼실한 믿음이 자랑거리다.증조할머니가 100여년전 외국선교사로부터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후손들 모두 목회자로 사역하거나 기독 전문인으로 활동중이기 때문이다.이같은 믿음 때문인지 주위에서는 오씨 형제네를 두고 깊이있는 신앙명가로 부르곤 한다.
증조부모가 낳은 아들 여섯 형제중 일제 당시 만주로 가 소식이 끊긴 둘째 할아버지를 빼놓고 후손들이 모두 믿음의 일꾼으로 성장했다.첫째 할아버지 후손인 정훈씨는 영관급 장교로 전역한 뒤 현재 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셋째 할아버지 후손인 성휴 선교사는 대구 동부교회에서 파송돼 현재 러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넷째 할아버지의 후손인 정현 목사는 로스앤젤레스 사랑의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으며 동생인 정호 목사는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다. 여섯째 할아버지의 자손인 창윤 목사는 영진교회를 섬기며 정희영 사모 역시 총신대에서 유아교육 강의를 담당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오창희 대희 형제는 다섯째 할아버지의 후손들이다. 드러난 면면만 보면 이들이 다른 할아버지들의 후손에 비해 다소 부족한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도 않다. 오창희 집사의 경우 서울대에서 종교철학으로 석·박사를 딴 뒤 교수생활을 하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올해 총신대에 입학했다. 삼십대 후반에 어렵사리 잡은 교수 자리를 미련없이 포기한 것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시작한 신학공부가 결코 쉽지 않지만 사명감을 갖고 매달리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오집사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북미지역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선교집회 ‘98 코스타’에 강사로 참석하면서부터다.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재우면서 손자를 목회자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던 할머니의 간구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오집사는 털어 놓는다.
사실 오집사가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자 누구보다 친지들이 나서서 말렸다.체계적이고 계급적 사역을 요구하는 한국적 목회 풍토에서 불혹의 나이는 너무도 뻔한 험한 여정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부인인 유영희 교수(합동신학교)가 “뜻한 바가 있고 진정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면 가라”며 적극 거들었다.오집사는 “두 아들을 챙기며 뒷바라지 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정말 제대로 배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생인 오대희 편집장은 98년 프리셉트에 입사한 뒤 묵상및 영성 서적을 잇달아 내놓아 감각있는 출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그는 성경 편찬사업과 목회자 대상의 세미나를 주로 기획한 프리셉트에 묵상 및 신앙 교양서 바람을 일으켰다.대구대 사회복지학과와 총신대 대학원을 나온 그는 총신대 시절 학교 신문 편집장을 맡아 필력을 뽐내기도 했다.
오대희 편집장은 “꿈을 주는 문서사역자가 남고 싶다”고 말한 뒤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이야기를 소개해 쑥스럽다”고 웃음지었다.
/이병모기자 east@kmib.co.kr (20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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