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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6 22:09
글쓴이 :
행정간사
조회 :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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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광주리교회 칼럼 - 기생충 / 남윤우성도
영화 ‘기생충’이 상이란 상은 다 휩쓸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은 어딘가에 ‘기생’해서 산다는 주제가 관통하는 영화인 거 같다. ‘~인거 같다’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전 세계인이 극찬하는 이 영화를 나는 보지 못해서이다. 작년 영화 개봉 당시에 졸업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2019년을 끝으로 내 대학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지난 7년간의 수원생활을 되돌아보고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하나 하나 감사한 것들 뿐이었다.
21살. 과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던 나는 우주과학과(천문학과)에 진학했다. 캠퍼스 풍경과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각종 학생회 행사와 동아리 공연들. 심지어 교수님의 강의들도 매 순간순간이 설렜다. 대전에선 갈 수 없었던 미술 전시회 티켓을 위해 끼니를 걸렀지만, 마음도 뱃속도 든든했다. 학교에 무료 인문학 강의가 있다고 하면 줄 서서 강연을 듣고 감명받아 몇일을 취해있었다. 더벅머리에 추리닝과 바람막이만 입고 다니는 괴짜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이곳에서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거듭나야지 굳게 다짐을 했다.
1년뒤. 지식인은 개뿔이었다. 그냥 콧대 높은 외톨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득 찾아오는 마음 한켠 조급함과 공허함에 화들짝 놀랐다.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은 나이였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서툴고, 속에는 생각이 많아 쏟아내기에 바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때마다 어리고 고집 샌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받아준 곳은 결국 신앙공동체. 교회라는 사실을 돌아보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교회는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언제든지 먹고 잘 수 있는 공간과 놀아주는 형들이 있었다. 교회는 신기할 만큼 화목했다. 아직도 선하게 그려진다. 성도님들은 서로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다. 아기들 울음소리와 뛰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분명 따뜻한 공간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왔더니 자그마했던 교회는 두 배로 불어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교회(?)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잘 연합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지금 우리 교회의 웃음소리는 2배 4배 더 커진 거 같다. 입대 전 환옥집사님 배 속에 있던 수아가 이제는 내 앞에서 이쁜 짓(?) 하는 것을 보면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는 걸 더 분명하게 본다.
작은 개척교회가 세워지고.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나의 20대에 허락된 것은 분명 특별하고 귀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심어지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나무가 기대어 숲이 되는 과정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시되는 시대에 쉽게 배울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원리’를 교회를 통해 배웠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우주의 팽창과 양자 요동이 자라는 속도 차이로 인해 우주가 진화하는 것을 배웠던 수업보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신앙 공동체에서 배우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생동감 있다. (둘 다 공부해본 졸업생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 나에게 열두광주리교회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있도록 알려준 대학교 같은 곳인 것 같다.
졸업했으니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나? 정든 교회도 졸업할 때가 되었나? 고민이 많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더 우리 교회에 있고 싶은 마음이 분명했다. 이번 설에 부모님께 수원에서 더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맡아내고선 신나서 주소도 대전에서 교회 2층 보아스 방으로 옮겨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교회에서 산다고 하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때마다 우리 교회는 떠돌이를 받아주고 채워주는 교회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한술 더 떠서 이야기한다. 요즘 트렌드가 또 ‘기생충’ 아니냐. 교회에서 ‘기생’하는 내가 ‘기생충’ 아니겠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뻔뻔하게 하고 다닌다.
거창한 이야기를 주절거렸지만 사실 이 글의 결론은 교회 2층 보아스 방으로 제가 이사 왔다는 전입신고를 올리는 글이다. 평일 날 교회에서 갑자기 꾀째재한 차림으로 어떤 청년이 출몰한다면 성도님들은 너무 놀라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 칼럼을 통해 미리 인사드린다. 앞으로 교회에서 기생하는 남윤우 성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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