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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23 06:59
새벽예배의 단상
 글쓴이 : 담임
조회 : 1,016  
우리교회 설립이후 두 번째 새벽예배를 드린 아침입니다.
교회설립이후 1년 반동안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았으니 이 또한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새벽예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참 많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이유로 저혈압으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고, 야행성의 생활 습관은 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척후 성도들이 모두 멀리 있기 때문에 혼자 새벽예배를 하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배가 기쁨이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지는 않을까에 대한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주님께서 때를 주시면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곤 있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몰랐습니다.

유강도사님이 우리교회 근처로 이사 오시면서 새벽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집 주변에 이사 온 성도들이 새벽예배를 하자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정하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생활은 참 귀한 것이지만 우리는 인간이라서 새벽에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교회에 담임목사가 새벽에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은혜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귀한 동역자를 보내 주시고 강도사님을 통해서 새벽기도의 시간을 열게 하시고 이어가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을 전하면서 문득 제 앞에 앉은 젊은 부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세대를 닮아가는 신앙에 대한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에 그 집사님이 쓴 칼럼의 내용이 자신의 어머니의 신앙을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쓴 글이 잠시 오버랩 된 듯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딸은 어머니를 닮아가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게 됩니다. 새벽을 깨우며 어머니의 신앙의 모습을 이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새벽예배에 대한 과거의 나의 생각들입니다. 새벽예배는 농경문화에 적합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도시 문화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약한 체력 때문에 새벽예배를 드리고 온 종일 지쳐 무기력한 것보다는 푹 자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왔었었습니다. 나의 연약함 때문에 새벽보다는 저녁기도 혹은 특정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새벽만큼 절대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연약함이 만들어낸 구실과 핑계였을 것입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늘 품은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나는 나의 부모님을 닮지 않았을까라는 점입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한 평생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성실입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당시 할아버지에게는 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논에 모를 심기 전에 논을 일궈야 하는데 소에 쟁기를 걸어서 일을 해도 며칠을 해야 할 정도의 큰 논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괭이를 들고 가셔서 그 논을 일구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어린 내가 봐도 참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것이 저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아버지는 한번도 쉬지 않고 괭이질을 해서 논을 일궜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꽤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등교 때와 하교 때 할아버지의 모습을 매일 보았는데, 괭이를 들고 땅을 쪼는 똑 같은 모습, 하지만 서 있는 위치가 다른, 마치 만화를 그릴 때 같은 그림으로 시간의 흐름의 변화를 줄때 사용하는 그 기법과 같은 몇 장의 달라진 사진들을 매일 아침과 저녁에 보는 듯 했습니다. 결국 그 많은 논은 괭이로 다 갈아엎었고 그 땅에 모를 심었습니다. 어린 나에게는 경이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부모님도 성실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분들일 것입니다. 새벽 3시면 교회에 가서 기도로 시작하시며 이른 새벽부터 농사일을 한 평생 해 오신 분들입니다. 나의 가장 큰 의문은 왜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닮지 않았는가라는 점입니다.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부모님이 자신들은 고생하더라도 자식의 손에는 흙을 묻히기 싫어하셔서 일을 많이 시키지 않아 습관화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여전히 성실하게 새벽을 깨우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모습은 나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며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앞 자리에 앉은 젊은 부부를 보면서 문득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도 저들의 부모님이 쌓은 신앙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부모님을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세대를 통해 흘러가며 계승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새벽예배에 대한 나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귀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녁 늦게까지 지친 모습으로 일하다 귀가한 우리 성도들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것보다 나는 그들이 편안한 단잠을 자는 것이 더 기쁘고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기도의 몫은 내가 좀 더 하면 되니까요. 할 수 있다면 좀 더 편하고 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것을 누리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성도를 향한 일관된 나의 마음입니다.

농경문화에서나 맞는 새벽예배가 도시문화에서 어떻게 정착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앞으로 새벽을 깨워갈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과 환경과 체력과 모든 것을 종합하여 거기에 맞는 걸음으로 신앙이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덧, 나는 인생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늘 의문처럼 여겨졌던 늘 새벽에 교회를 향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밤늦게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아침에 절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오전은 항상 몽롱한 상태가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점점 변해가는 나를 바라봅니다. 나의 모습 속에서 또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의 모습 속에서 논을 일구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감사한 아침입니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고 했는데, 성실한 조상 아래 불성실한 아들로 태어난 것이 늘 의문이었는데, 그 의문의 고리가 하나 둘씩 풀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 최 목사님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온다’는 전도서 말씀을 많이 인용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세대의 변화를 많이 경험하나 봅니다. 이제까지는 나는 부모님의 기도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바통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넘기시려나 봅니다. 이제는 내 기도로 내가 먹고 살고 더 나가서 내가 영적으로 부모님을 위해 기도를 올려 드리며, 이전보다 더 우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또다른 환경의 변화가 오고 체력적인 한계가 오면 여전히 새벽을 지킬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으며 내 속에 일어나는 부모님의 영적인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젠가 내 품에서 자란 내 아이들도 나의 믿음을 닮아 새벽에 교회를 향하는 그날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귀한 믿음은 이렇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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